나리 / 순천, 벌교 / 농촌쓰레기

달나리
발행일 2023-12-26 조회수 136

자기 소개

나리(진희) 라고 합니다. :)
3년 전쯤 순천과 벌교로 이주해 '논밭암시랑토'라는 이름으로 농사짓고 있어요.
지구에 덜 해로운 농사를 고민하면서, 부족하게나마 일회용 멀칭/살생제/농약/화학비료 없이 농사 짓는데요,
밭에서 비닐 조각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걸 계기로 비로소 농촌의 쓰레기를 인식하게 됐어요.
지금은 농촌쓰레기를 가까이 두고 살면서 《출세한 쓰레기들》 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쓰레기들을 세상에 보이고 있습니다.

🌿 《출세한 쓰레기들》 온라인 전시 l https://art.onthewall.io/PKhh6wDoJHqSVR2ZNi3i
🌿인스타그램 l @hannari215, @nongchon_trash_art

지역활동 소개

최근엔 농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역설적으로 농사를 조금 내려놓고 여러 알바를 병행하고 있어요. 
6월부터 9 to 5 사무 일을 시작했더니 좀이 쑤시네요. 

전에 한 2년 정도,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가 안부확인과 말벗을 하는 '생활지원사' 활동을 했었는데요.
제가 사는 면 단위에서는 '낫낫한 가인네'로 소문이 나버려서 핸드폰도 봐드리고, 화장실 변기도 고쳐드리며 ㅎㅎ 
적당히 응큼한 속내를 숨기면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직업인(지역문화생산자)으로서 지역에서의 라이프 사이클을 소개해 주세요.

사부작사부작,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술)판 벌이는 걸 좋아해서 벌교에서 '풀풀장'이라는 주민장터를 여는데 함께하고 있고요. 
최근엔 벌교와 제가 사는 농촌 들판에서 영화상영회를 열기도 했어요.   

올해는 '쓰레기'를 매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관계를 맺었는데요.
내년에는 농촌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농촌과 농촌쓰레기를 만나는 계기도 더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역 활동의 시작과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답변) 지역으로 이주하고, 왜 재미난 일들은 다 다른 곳에서 열리는 건지요. 
도시에서처럼 향유할만한 무언가가 없으니 '없으면 내가 만들자' 일을 벌이게 됐어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지역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작은 풀잎, 베베 꼬인 줄기, 빨간 열매, 맛진 뿌리, 솜털 보숭보숭 벌레들에게 받는 감동이 있어요.
직접 만든 먹을 거리를 나누는 풍요로운 마음도 좋고요. 
할매들의 패션, 말투, 생각에서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지역에서의 성장 경험

지역에서 경험한 성취와 좌절, 성장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세요.

아직 지역 생활이 오래 되지 않아서 크게 좌절한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경계의 확장에 대한 고민은 깊습니다. '꾸준함'에 대한 근육도 뭉근하게 키워나가고 싶고요. 

지역 장터를 친구들과 운영해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요.
나름 그래도 꾸준히, 즐겁게 열어왔다 생각했는데, 기획단 친구들이 지치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는 걸 보면서 
경계의 확장만큼이나 이미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챙겨가고 싶어요.   


관계의 확장

지역에서 가장 많이 교류하는 사람 한 명을 소개해주세요.

96세 김맹순 씨, 제가 참 사랑하는 이웃동네 할머니예요. 
동지에 같이 동지 죽 쒀먹고 새해되면 세배하러 가고 세뱃돈을 주겠다, 안받겠다 실랑이 하고 
출근하는 길에 들려 할머니 실버대학에 같이 등교도 하고, 고구마도 나눠 먹고요.
할머니를 보면 '생애구술사' 기록도 남겨놓고 싶고, 우리 할머니 장 담그는 솜씨도 배우고 싶고 
여러 영상, 사진들도 남겨놓고 싶고.. 
더 많이 사랑하고 존재하고 함께하고 싶어요. 


2023년 회고

올 한해 지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활동 또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답변) '일을 줄이라'는 짝꿍. 
제가 많은 일을 벌이며 긴장하고, 열중하고, 균형잃고, 즐기는 것들을 보며 
내년엔 일 좀 줄이라는데. 음. 고민이어요.   


겨울나기

겨울(비활동기간)을 건강하게 충전하며보내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해파리처럼 둥둥둥 떠다니며 긴장풀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살고 싶은데 마음만큼은 어렵겠지요.  
그래도 놓고 있던 좋아하는 것들을 쭉 늘어놓고 하나씩,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일단 사랑하는 이들에게 손편지부터!  말랑말랑 귤 조물러가며 책도 읽고요. 


지역의 변화와 위기

여러분이 살고 활동하는 지역의 위기나 위험 요인이 있나요?

(답변) 사는 곳 가까이에 지정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려고 해요. 
'한적한 자연을 찾아 간 농촌에서 오히려 지독한 환경운동가가 된다'는 표현처럼, 농촌 곳곳이 자본과 토목건설의 먹잇감이 되려해요. 
가끔 꿈뻑꿈뻑 상상을 해요. 지정폐기물이 들어서는 모습을요. 
그렇담 정말 높은 나무나 절벽에라도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여야 할까 싶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귀농/귀촌/이주를 설득하곤 하는데, 한 지인은 지정폐기물 문제를 두고 이 곳으로 오길 체념하기도 했어요.
아 슬퍼라.   


지역에서의 꿈

지역에서 꾸는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한 때는 꿈을 밥처럼 먹었는데요. 지금은 많은 것이 불안정 하다보니, 좋아하는 상상과 꿈이 잘 안 그려지기도 해요. 
집도, 농사짓는 땅도 모두 빌려서 살고 있으니. 언제 나가야하나, 내가 사랑하는 나무는 언제쯤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심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에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이에요. 당장은 땅에 잘 발을 딛고 싶어요.  


로컬의 미래

내가 기대하는 로컬의 미래와 이를 위해 스스로 만들고 싶은 활동이나 협업을 제안해주세요.

이주한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고 살 만한 땅 또는 집, 협업해 농사를 경험하고 지을 수 있는 농장, 커뮤니티 부엌, 삶기술 작업실 
같은 것들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하는데, 쉽지 않겠지요? 

지금 당장은 '(가칭)시골살이 연구소'라는 곳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막상 좋아서 농촌으로 이주했지만, 이 농촌에서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여러 작당과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농촌 현실을 알리는 글도 쓰고, 이주민의 시선으로 정책 제안도 해보고, 삶의 기술을 잊지 않고 살려나가는 여러 프로그램도 열어보고요. 
그 안에서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고, 말이 모이고, 생각이 모이다 보면.. 또 그걸 잘 반죽해서 이렇게도 빚어보고, 저렇게도 빚어보고요! 


고흥은?

고흥이란 지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알려주세요.

바다가 아름다운 곳, 징하게 먼 곳, 멀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훼손되지 않아 좋은 곳, 
바닷가 앞 부동산 매물이 자주 나오는 곳, 좋아보이지만 살기엔 주저되는 곳,
따뜻한 남쪽나라, 쭉 뻗은 도로에 로드킬이 너무 많아 엉엉 울면서 차를 몰던 곳. 


컨퍼런스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안해주세요.

일단 만나봐야.......................(주저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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