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양평/지역살이

미나리
발행일 2023-12-29 조회수 128
 

자기 소개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엇. 경기도 양평에서 그냥저냥 살고 있는 미나리입니다.


지역활동 소개

생활인으로서 지역에서의 라이프 사이클을 소개해 주세요.
뭐 특별한 라이프 사이클이랄 게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 딸래미 등교준비를 재촉하며 나도 씻고 밥 먹고 아이와 남편이 나가고 나면 저도 일을 하러 가지요.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고요. 9시에 일을 시작해서 평범한 직장인처럼 12시면 점심을 먹습니다. 12시 50분에서 1시 10분 사이에 어김없이 딸래미에게 전화가 옵니다. 아직 핸드폰을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콜렉트콜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서는 "오늘 태권도 안 가면 안되냐. 돌봄 안하고 친구랑 밖에서 놀면 안되냐.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와라." 등등 정해진 일과 외의 것들을 요구하며 매일 같은 실랑이를 합니다. 수업과 방과 후 돌봄과 태권도를 마치고 태권도차량이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면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고, 약간의 간식을 먼저 먹이고 아이가 노는 동안 남은 업무시간을 채우고, 업무시간이 지나면 나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뒷 정리를 하고 9시가 되면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책을 읽거나 OTT로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듭니다.   

직업인(지역문화생산자)으로서 지역에서의 라이프 사이클을 소개해 주세요.

한 달에 한 번, 지역 예술단체 너영나영과 함께 하는 동아리 <고래고래>에 나갑니다. 고래고래는 중년 여성들이 모여 동그랗게 둘러앉아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노는 모임입니다. 서로 얼굴 마주보며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도 묻고, 누군가 어떤 이유로든 부르고 싶은 노래를 추천하면 다같이 그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또 다른 누군가가 다른 노래를 추천하면 또 그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흥에 겨우면 눈치 볼 것 없이 춤을 추기도 합니다. 연말이나 특별한 일 있을 땐 조금 더 연습을 해서 아마추어 무대를 만듭니다. 이렇게 모인 게 벌써 꽉 채워 5년입니다. 딸래미 4살 때 시작했는데 며칠 뒤면 9살이거든요. 비정기적으로 너영나영이 진행하는 예술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마을과 함께하는 대안학교 나무숲세움터 창립멤버이기도 합니다. 양평 정착 초기에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음악수업을 하기도 하고, 겨울이면 체험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일주일간 산에서 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활동은 하지 않고 응원하는 사람으로 후원을 하거나 아이들의 잔치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시민사회 회원으로 회비를 내고, 생협 조합원, 의료사협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네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손이 필요하다고 할 땐 가서 뭐라도 돕고요.  


지역 활동의 시작과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친구 따라 왔습니다. 서울에서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귀촌을 고민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때 나는 귀촌 생각이 없다며 따로 놀았는데, 이들이 모두 떠나니 외로웠습니다. 좋아하던 티비 드라마도 재미가 없고요. 그러다 직장생활이 한참 힘들 때 양평이 멀지도 않으니 나도 따라가야겠다 하고 왔습니다. 양평으로 이사 와서 1년 반 동안 왕복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다니며 일을 하다가 직장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지역활동을 시작했지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놀이학교를 하다가  대안학교를 세웠습니다. 모두 지인들이 하자는 일에 돈을 보태고 손을 보태는 정도였습니다. 회계가 필요하면 회계 담당, 아이들을 태우고 이동해야 하면 운전 담당, 회의 준비, 행사 기획, 리플렛 제작, 아이 돌봄, 식사 당번 등 뭐 사람이 필요한 일이 많았으니까요. 돈을 버는 일은 아니었고 도리어 돈을 쓰는 일이었지만 활동 자체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생활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활동 하느라 바빠서 달리 돈을 쓸 시간도 없었네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지역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처음 양평에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건 거울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사람이 없는 것도 좋았구요. 이 좋은 바람을 파운데이션이 가로막는 것 같아서 화장을 안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맨 얼굴이 너무 좋았습니다. 무서워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나갈 수 있어 좋았고요. 양평에 정착한 지 10년 넘었는데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들이어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학교가 작고 딸래미가 한글을 모르고 입학해도 괜찮은 곳이라는 게 좋습니다. 가깝게 사는 친구들과 음식을 해서 나눠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아이랑 손잡고 걸을 때 잔소리 할 일이 적은 것도 좋습니다. 아이가 곁눈질하며 딴 짓 하는 게 기껏해야 산딸기 따는 거, 언 논에 올라가 보는 거, 고양이 따라 뛰어가는 거, 예쁜 꽃 꺾는 거 이니, 잔소리할 것도 없습니다.  영감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감을 주는 것들을 적어 놓았네요. 


지역에서의 성장 경험

지역에서 경험한 성취와 좌절, 성장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세요.

아마도 지역이라서 대안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저인 숲과 냇가가 있었으니까요. 모두 최저시급을 겨우 넘겨 받는 비영리단체 종사자에 외벌이 가족들이었으니 서울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지요.  서울은 한 조각 땅도 그냥 두지 않으나 지역에서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을 땅이고 어느 정도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이지만 공간을 내주기도 하더라고요.  성취라면 성취겠습니다. 하지만 적은 자원으로 대안학교를 꾸려가려니 인생을 건 엄청난 수고와 헌신이 필요했고, 저는 제 길이 아니라 초반 몇 년간 힘을 보태고 중간에 나왔어요. 저는 제 일이 하고 싶었거든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려니 먼 데 나가기는 어렵고 지역에서 일거리를 찾았는데, 여기서 부터 좌절이 시작되었죠. 구인싸이트를 보니 온통 식당과 까페 뿐이었거든요. 10줄에 한 번씩 요양보호사 구인공고가 있었고요. 지역 단체들이 대부분 재정이 열악하니 기존 업력을 살려 모금컨설팅을 해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일으킬만한 재량은 안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결국은 가까운 구리에 나가 일을 하다가, 지금은 원격근무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어찌어찌 살고 있습니다. 
아!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살다보니 저녁 술자리 약속이 없어졌습니다.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채우기 시작했지요. 우연히 만난 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 일상에서 예술을 누리게 되었어요. 앞에서 소개한 너영나영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노래방을 가지 않는데, 공명이 좋은 공간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보니 노래방의 인위적인 에코가 거슬리게 되었거든요. 잘 만들어진 연극을 보러 가는 일은 훨씬 힘들어졌지만 내 일상이 동네 언니들의 일상이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봅니다. 엄마들이 직접 지역의 전설을 동화로 만들어 구연하기도 하고, 60-70대 언니들이 고단한 농사일 마치고 장구 치며 시름을 던져버리는 장면들도 봅니다. 예술이 일상에 들어오니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를 흠뻑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경쟁이 적으니 좋기도 하지만 뒤쳐지고 있구나를 종종 느끼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자라고 있구나 싶습니다.  

관계의 확장

지역에서 가장 많이 교류하는 사람 한 명을 소개해주세요.

친한 사람 이름 대라는 것일까요? 같이 이주해 온 친구들과 집을 같이 지었고요. 교회에 다니니 교회 사람들도 봅니다. 학부모이니 다른 학부모도 카톡으로 만납니다. 건너편 집 사람들과는 데면데면 합니다. 집 지을 때 갈등이 좀 있었거든요.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분들과는 또 잘 지냅니다. 마을 길 낼 때 저희도 돈을 좀 보탰어서요. 주로 여성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네요.  


2023년 회고

올 한해 지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활동 또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양평 고속도로 문제로 지역민들이 들끓었는데, 정치문제로 지역이 갈등을 겪어야 하는 게 참 싫었습니다. 


겨울나기

겨울(비활동기간)을 건강하게 충전하며보내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눈 오면 눈 치워야 하고, 보일러 터질까. 세탁기 얼까. 한파를 대비하느라고 바쁘네요. 겨울에도 일상은 이어집니당. 
생활은 한시라도 멈추면 안되는 거라서 비활동기간이랄 게 없지요.  


지역의 변화와 위기

여러분이 살고 활동하는 지역의 위기나 위험 요인이 있나요?

환경파괴가 매우 빠르게 이어지고 있어요. 권력감시는 여전히 느슨하고요. 선거부정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이가 여전히 기세등등 공식행사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겨움마저 올라와요. 그렇다고 이것이 위기나 위험요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지금 시대적으로 냉소와 체념이 늘고 있는 것이 걱정이긴 합니다. 저만해도 지역에서 뭘 하겠어..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돈도 안되고 열심히 하려다가 상처나 받을테고 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적당히 기여하는 것으로 포지셔닝을 하고요. 무엇보다 이 '적당히'는 우리 지역에서 오래 살기 위한 나름의 방책인데, 이런 마음들이 지역을 지키는 일인지 진보를 더디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지역에서의 꿈

지역에서 꾸는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관심사는 늘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이 내 지역에서 자라 내 지역에서 살아도 괜찮은 거요. 우리 지역은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이 아이들이 성장자원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지역에서 무슨 꿈을 꾼다면, 저는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을을 상상해 보네요. 


로컬의 미래

내가 기대하는 로컬의 미래와 이를 위해 스스로 만들고 싶은 활동이나 협업을 제안해주세요.

해외 여러 나라들과 지역 차원에서 교류하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요. 농사를 짓든, 새로운 기술을 펼치든, 공부를 하든.. 우리 지역에 갇혀 있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떤 모양일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고흥은?

고흥이란 지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알려주세요.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기억되네요. 


컨퍼런스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안해주세요.

-


Comment (0)